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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언론보도

  • [부산일보]12.9.10 [성폭력 피해자 치유] 자책은 금물… 그날의 아픈 기억 당당히 얘기하세요
  • 등록일  :  2013.08.07 조회수  :  7,081 첨부파일  : 
  • ▲ 부산성폭력상담소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집단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왜 그랬을까 자책하지 말아요, 움츠러들지 말고 고통의 기억들을 속시원하게 토해내요" A(26·여) 씨는 3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몸이 떨려온다. 새벽에 홀로 귀가하던 A 씨를 괴한이 흉기로 위협해 인근 공터로 끌고가 성폭행했기 때문이다. A 씨는 8개월 전부터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가까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있었다.

    부산성폭력상담소는 지난달 24일부터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마음열기와 타인과의 관계회복, 후유증 치료, 자존감향상과 목표설정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집단 상담 프로그램 진행
    참가자들 점차 마음의 문 열어

    무대에서 사건 당시 얘기하는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와
    상황 재연 사이코드라마도 호응


    상담가들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삶과 사건을 분리해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지영경 상담실장은 "다른 범죄와는 달리 피해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성폭력범죄 피해자들의 특징이다. 성범죄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때문이다"고 지적했다. 2차 술자리에서 동행했던 지인에게 성폭행을 당한 기억이 있는 B(23·여) 씨는 상담 도중 "네가 그날 술을 덜 마시지 그랬어, 왜 그렇게 행동했었니 하는 주변의 반응들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심적인 고통을 털어놨다.

    B 씨는 매년 10월이면 열리는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말하기 대회는 무대에 선 성폭력 피해자가 30~50명의 참여자 앞에서 사건 당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집단상담의 변형된 양식이다. 집단상담프로그램이 끝나면 참여자들과 1박2일 힐링캠프를 떠난다.

    하지만 피해사실을 드러내길 꺼리는 사회 분위기탓에 아직도 집단상담 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개별상담이 개인의 내밀한 속내를 풀어내는 데 적합하다면 집단상담은 집단의 역동성을 활용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을 접하면서 사건을 객관적으로 응시하고, 피해자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매년 열리는 사이코드라마, '마음의 극장'도 참여자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사이코드라마란 참여자들이 범죄피해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가상극을 말한다. 참여자들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역할을 분담해 연극을 한 뒤 역할을 바꿔서 동일한 상황을 재연하고 각자의 생각을 공유한다. 떠올리기조차 꺼려지던 당시를 재경험함으로써 참여자들은 비록 가상의 공간이지만 '그때는 하지 못했던 말과 행위'들을 무대 위에서 한꺼번에 쏟아낸다.

    부산성폭력상담소의 조주인 팀장은 "참여자들은 가슴 속에 응어리졌던 것들을 배출하고 의도하고 싶은 상황을 자율적으로 연출하는 시간을 가진다. 치유에는 '표현'이 중요한데, 집단상담과 상황극과 같은 힐링 프로그램들은 이것을 극대화하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여중생 C(14) 양은 "처음에는 '설정일 뿐인데 이걸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하고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또래 친구들끼리 무대에서 이야길 나누며 울고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토로했다.



    김현아 기자 srdfish@busan.com